수원교구 요당리성지
 




   
  63호:(2012년 2월): 최고의 행복은 최선의 선택에서 비롯되어 최고의 사랑을 함으로써 쟁취된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2-01-31 17:13     조회 : 1068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구정 연휴 때 맵다라는 표현이 실감이 날 정도로 강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성지에 오셨던 분 중에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날씨가 추운걸 보니 올 한해 저의 삶도 냉랭하고 고단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백지와 같은 새 여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날을 미리 예단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새 날들을 위축시키지 말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아름답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하느님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 여정은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백지와 같은 날들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 드린대로 이 새 여정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은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상황이 암울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선물을 값지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하느님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외쳐봅니다. “여러분들 모두 하느님 안에서 파이팅.”     


1. 최고의 행복은 최선의 선택에서 비롯되어 최고의 사랑을 함으로써 쟁취된다. 

  안동 교구장이셨다가 은퇴하신 두봉 주교님께서 당신의 저서 “가장 멋진 삶”에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예수님께 반했는가? 예수님께 사로잡혔는가?”
 
  이 질문과 함께 당신의 신앙고백을 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모태 신앙인이셨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이끌림에 의해 성당에 나갔었지만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신앙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가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교님은 그때부터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성서 속에서 내가 부모님의 이끌림에 의해 알고 있고, 받아들인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된 성서공부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의문과 회의에 사로잡힌 당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점점 더 예수님께 반하게 되고 사로잡히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서를 통해 드러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통해 가장 멋진 삶을 사셨고, 가장 행복한 삶을 사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2000년 전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짧았지만 불꽃같은 삶을 통해 자신의 안위보다는 언제나 가난한 자와 병자와 죄인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고통과 시련을 돌보아주시고, 치료해 주셨으며, 끝내는 당신의 벗이라고 칭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상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하셨고,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최고로 멋진 삶, 행복한 삶을 사셨다는 사실을 발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결심하고 선택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통해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최고의 사랑을 함으로써 최고로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겠다고….”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는 주교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면서 뒤이어 주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한 ‘예수님의 행복의 길, 최고의 사랑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1)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 하느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약하고 부족한 사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애써라, 노력해라. 정신 차려라. 도를 닦아라” 하고 말씀하셨다면 무척 어려울 텐데. 그런 말씀은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빈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얼마나 쉽습니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복을 받는다.” 다른 데 집착하지 않고 무엇보다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면 하느님의 복을 받겠지요. 우리가 사로잡히기 쉬운 것이 돈입니다. 물질과 재산, 가진 것, 자기 집, 직위 등에 마음 쓰는 것, 공부, 칭찬, 오해도 참 민감한데 마음의 가난은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기에 나그네처럼 살라 하신 첫 번째 방법은 참으로 고마운 것 아닙니까?

2) 슬퍼해야 한다: 슬픔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 “행복을 받아들이려면 슬퍼해야 한다?” 무엇을 두고 슬퍼해야 하는가? 자신의 죄, 잘못을 슬프게 생각해야 합니다.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라고 할까요? 세상의 온갖 모순, 악순환, 괴로움, 고통, 화산 폭발, 일본의 지진, 원전사고 그리고 누구든지 당할 수 있는 수많은 사고, 따돌림과 부정을 슬프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두고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믿고 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인데 그렇지 못할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까? 그런 때는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쟎아요. 세상의 악행을 보고 눈물 흘리는 것은 자연스럽죠. 우리답게 자연스럽게 살면 하느님의 놀라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3) 부드러워야 한다: 착하게 살고, 너그럽게 살고, 서로 참고 견디고 이해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온유하고, 온순하게, 순수하게 사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강한 사람에게 어려움이 더 많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부드러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고맙고 좋습니다.

4) 바르게 살아야 한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정도, 곧 바른 길, 바른 생각, 바른 마음, 바른 말, 바른 태도, 정직하지 않은 것을 멀리하고 양심적으로 바르게 살며 정의를 실천하는 것인데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자기답게 있는 그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됩니다.

5) 자비로워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늘 어려운 사람들, 환자와 죄인을 배려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도와주며 힘을 주고, 작은 사람, 불행 중에 있는 사람, 약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 주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것이죠.

6) 깨끗해야 한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우리가 죄를 짓는다 해도 예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고 새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7)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자주 바칩니다. 화목하게 살고, 화해를 모색하며 도모하고, 무엇 때문이든 싸움과 대립과 압력을 멀리하고 자연스럽게 함께 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8)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분이 먼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살다보면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낯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피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볼 낯은 있어야 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셨지만 우리는 당연히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교님께서는 뒤를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명절에 복자를 쓴 등을 거꾸로 달아놓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보고 이상해서 물어 보았더니 그들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복은 하늘에서 오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복은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복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멋지게 살고, 곱게 살아야 됩니다. 멋지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늘에서,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복을 주시려고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지금부터 행복, 영원한 행복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행복을 거저 받아들이는 단순한 삶을 삽시다." 

  언젠가 어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지 않는다’라는 악인의 독백이 나왔었습니다. 즉 선인의 정의로움을 비꼬며 이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악인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세상이 기대하는 승리에 있지 않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승리를 바란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선택한 믿음 안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행복을 얻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즘 겨울이 되니까 성지에서의 생활이 조금은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자주 생각이 드는 것은 예전에 이곳에 터전을 잡고 주님 안에서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입니다. 다시말해서 지금 저는 다 갖추어진 곳에서 생활하면서도 어려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데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에 와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셔야 했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얼마나 더 큰 어려움을 겪으셨을까? 하지만 저는 감히 단정해 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하고 기쁘게 생활하셨을 것이라고. 왜나하면 그분들은 최선의 선택을 통해 최고의 사랑을 하셨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행복을 언제나 받아 누리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봉 주교님이 고백하셨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고백하셨던 것처럼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의 작은 소망처럼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를 고백하셨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