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62호:(2012년 1월):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도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한 해가 되자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2-01-03 13:23     조회 : 1011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2012년 새해를 맞이하여 주님 안에서 여러분들 모두가 더욱더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이 풍성하게 열매 맺으시길 기원합니다. 요전번에 미사에 오신 신자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매스컴을 보니까 올 해 2월 달에는 윤달이 껴서 결혼업체가 울상이라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올 해 2월 달이 호재입니까? 아니면 악재입니까?” 신자분들이 머뭇거리시기에 제가 확신있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호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하느님께서 하루의 삶을 우리에게 선물로 더 주셨기에 더해진 그 하루의 삶을 통해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은덕을 쌓는다면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은총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서두에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올 한해를 살아가면서 분명히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이와 같은 세상의 조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흔들리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의 길을, 올바름의 길을 걸어나가자라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시한번 여러분들에게 축원드립니다. “올 한해 여러분들 주님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 있어 진리의 빛을 비추는 사람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영육간에 더욱더 건강하십시오.”   
 

1.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도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한 해가 되자
  작년 12월에 수원교구 성지사제들의 피정 겸 연수가 있었습니다. 매년 그래왔지만 요번 피정에 임하면서는 특별히 드봉 주교님께서 지으신 “가장 멋진 삶”이라는 책을 영적독서로 택하여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서도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도 원합니다”라는 키아라 루체 바다노의 신앙고백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키아라 루체 바다노((이탈리아, 1971년 10월 24일-1990년 10월 9일)는 포콜라레 운동을 하던 분으로서 19세의 어린 나이로 골수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신 분이십니다. 짧은 생을 살으셨고, 꿈 많고 생기발랄한 평범한 소녀였지만 골수암이란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느님께 굳은 신뢰심을 둠으로써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삶의 모범으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교황청은 이례적으로 이분의 이러한 모습을 현양하여 2010년 9월 25일 복자품에 봉헌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분이 보여주신 하느님께의 신뢰란 무엇인가?
 
  첫째는 이분이 골수암이란 사실을 알았던 그 시점에 자신의 고통을, 죽음을 하느님의 뜻으로 순명하며 받아들였던 자세입니다 . 즉 이분은 여느 소녀들처럼 생기발랄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과 테니스를 하던 중 자꾸만 테니스 채를 놓치며 몸의 기운이 빠지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이상을 느껴 병원에 가보니 골수암 판정을 받았고(17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통보받았습니다. 순간 절망하였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닥친 절망과 두려움에 한동안 흐느껴 우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방에서 나와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즉 “왜 나에게”라는 고통의 말마디 대신에 '예수님 당신이 저를 죽음에로 부르신다면 그것이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라고 하느님의 뜻에 그 고통마저도 죽음마저도 순명하며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수태고지 사실을 듣고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찌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고백하셨던 것처럼 키아라 루체 바다노도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키셨습니다. 
 
  두번째는 투병 중에 이분이 자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바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투병의 고통 중에 이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순간을 잘 산다면 모든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그 끔찍한 고통의 순간을 예수님께 선물로 드린다면 이 끔직한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한 의미있는 선물로 바친다면 고통은 그냥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번째는 마지막 임종이라는 고통과 좌절의 순간에서 하느님 생명의 나라에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두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저는 이분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피정하는 내내 고통과 시련 앞에서 좌절하며 하느님을 원망만 했었던 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을 통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라고 고백했던 키아라 루체 바다노처럼 '제게 주어진 고통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라고 고백드리며, 그 과정 중에 계속해서 저를 짓누르는 고통이 있다면 그것을 하느님께 작은 선물로 봉헌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내 삶에 고통과 시련이 있다면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분을 현양하며 복자품에 올린 것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않겠다’ 라는 의식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그것도 당장 손에 잡히는 기적의 환희가 아닌 고통뿐인 현실 앞에서도 언제나 우리 삶 안에 현존하시고 살아계신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참 모습이요, 우리 인간 실존의 참 모습임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2012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이 분의 모습을 소개해 드리는 것도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를 괴롭히는 크고 작은 고통과 이 시대의 무신론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언제나 주님께 나의 모든 삶을 의탁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201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모든 가족이 주님의 십자가 앞에 모여 키아라 루체 바다노 복자께서 고백하셨던 것처럼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을 바라보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라고 용기있게 고백하는 시간들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2. 구원자이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그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작년 성탄 전야 미사를 봉헌하면서 이러한 화두를 제시해 드렸습니다. “구원자이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그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면서 미사에 참례하신 분들께 그날 있었던 저의 체험을 소개해 드리며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오늘 새벽에 눈이 내렸습니다. 일기 예보상으로는 1-2cm정도 내린다고 했는데 아침에 눈을 치우러 밖을 나갔을 때는 발목 위까지(14-15cm) 눈이 내렸습니다. 항상 겨울이 되면 눈치우는 것이 일상인데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서 ‘아이구 오늘 죽었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즉 1-2cm정도 내리면 양손에 너까레 하나씩 들고 쭉쭉 밀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2시간이면 다 치우는데 14-15cm정도 왔으니까 힘이 들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양손에 하나씩 너까레를 들고 미는 것은 너무나도 힘에 부쳐 너까레 하나만을 가지고 있는 힘을 다주어 제설작업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너무나도 힘이 들었고 온 몸이 다 쑤셔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주님, 하필 오늘 당신의 오심을 경축하는 날인데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정갈하게 보내고 싶은데 왜 이런 날씨를 주셔가지고 저의 기대를 저버리십니까?’ 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남녀 한쌍이 탄 두 대의 오토바이가 ‘야호’ 라고 환호성을 지르며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근처 공장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동남아 외국인들이셨습니다. 순간 생각이 든 것은 ‘이분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환호성이 나올 만한 날이겠구나.’ 즉 책으로만 보았고, 상상으로만 그렸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이분들은 오늘 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매일 매일의 생활이 이국 땅에서 힘들었을 텐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체험하고 있으니 오늘 하루가 그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기쁨이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오늘 하루 경건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주님은 저의 기대를 저버리시고 눈을 너무나 많이 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온 몸이 쑤십니다. 그런데 반대로 주님께서는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님의 처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할까요?”
 
  묵묵부답인 신자분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기대를 저 버리셨지만 주님께서는 오늘 살아계신 하느님으로서 우리 삶 안에 현존하시며 나보다도 더 미소하고 미천한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당장은 나의 기대를 저 버리셨기에 주님께 실망할 수 있지만 살아계신 하느님께서는 나의 삶 안에 현존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살아계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께 믿음을 두고 희망을 두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구원자이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그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언제나 어떤 상황 하에서도 살아계신 그분의 현존을 바라보고 그분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에 따라 진리의 길을 걸어나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2000년 전에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살아계신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뵙는 영광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바라보고도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끝내는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내 눈앞에 계신 하느님께서 나의 기대, 나의 원의를 채워주시지 않고 병자와 죄인들과 가난한 자들과만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하느님께 실망했고 결국은 십자가에 그분을 매달았습니다. 바로 오늘 날에도 2000년 전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나보다 더 미소한 자들 안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0년 전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 하느님을 바라보며 당장 우리의 원의를 채워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과 생명으로 오시어 우리 삶 안에 현존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께 희망과 믿음을 두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그분을 바라보며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당신께서 바라시는 것이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라는 확고한 신앙고백을 봉헌 드려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올 한해 여러분들 모두가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우리 주님과 성지 성인들께 두손 모아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