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61호(2011년 12월): 우리는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어가고 있는가?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1-12-01 10:05     조회 : 987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일전에 순례를 오셨던 자매님중의 한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순교자 묘역에 있는 나무가 11그루인데 그것이 예수님을 배반한 가리옷 사람 유다를 제외한 11사도를 의미하고 있죠? 그리고 성당 앞 광장에 나무가 7그루 있는 것은 칠성사를 상징하고요. 아유! 어떻게 나무 한그루를 심더라도 교회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담아 섬세하게 조성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저도 자매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즉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의 이 질문을 언젠가는 강론에 써야겠네요.” 자매님의 질문을 강론에 써야겠다는 저의 말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되는 신앙인의 자세를 신자분들에게 말씀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섭리로 받아들이는 믿음이야말로 우리 신앙인이 지녀야 되는 완덕의 모습입니다. 2011년을 마무리하고 2012년을 준비하면서 혹시라도 세상적인 걱정에 근심할 수 있겠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며 나를 이끌고 계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어려우신 가운데에서도 올 한해 베풀어주신 여러분들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언제나 여러분들을 위해 부족하나마 기도하는 성지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더욱더 영육간에 건강하십시오.
 
1. 우리는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죽어가고 있는가?
  어느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페인 광장에 있는 세르반데스의 동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1547-1616, 세르반데스 -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었다.’ 돈키호테를 통해 우리들에게 친숙한 세르반데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세상을 풍자하고 고발하여 모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깨어서 죽고자 했습니다. 깨어서 살다가 깨어서 죽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삶을 마감합니다. 즉 돈에 미쳐서, 권력에 미쳐서, 명예에 미쳐서, 성에 미쳐서, 사람에 미쳐서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삶을 끝냅니다. 겨우 극소수의 사람만이 돈키호테처럼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습니다. 이 경우는 그래도 죽기 전에 깨어서 죽었기에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깨어서 살다가 미쳐서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례를 통해 ‘세상’에서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깨어 있지 못하면 미쳐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마태 25,1-13)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슬기로웠던 처녀들과 함께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신랑이 왔을 때 등불에 필요한 기름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토록 기다리던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고,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신부님의 말씀처럼 우리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의 삶을 지향하며 세례로써 그분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잠시 지나갈 세상의 유혹을 못이겨 우리 자신의 신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표현대로 깨어서 살다가 깨어서 죽지 못하고 깨어서 살다가 미쳐서 죽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도 “큰 돈 준다는 말에…. 학원장 사주로 불지른 소년, 그 후”라는 기사를 아래의 내용과 같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31일 김군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학원 4층 화재 현장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불을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김군. 평소 알고 지내던 학원장의 부탁을 받아 학원에 불을 지른 김군은 그곳에서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열흘 만에 깨어났다. 지난달 초 김군은 친구의 과외 선생님으로 알고 지내던 학원장 정모(51)씨로부터 ‘학원에 불을 내주면 보험금 2,400만 원 중 3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학원 경영이 어려운데 불이 나면 화재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돈을 주겠다는 학원장의 말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혼자 지방에 살고 있는 아빠가 생각난 김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3일 뒤 학원장 정씨는 김군에게 석유가 든 휘발유 통을 보여주며 ‘학원 문 앞에 놓을테니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들어가 불을 내라’며 김군에게 학원 열쇠를 건넸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4시 30분. 김군은 학원장이 시키는 대로 불을 질렀지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길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사건 직후 학원장 정씨는 불이 나기 전 거액의 화재 보험에 들어 논점을 수상히 여긴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현재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중인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난으로 한 소린데 애가 정말 그럴 줄 몰랐다’며 발뺌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불을 지르고 화상을 입은 소년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처지를 이용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행동을 한 학원장 정씨의 행태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죽어가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 기다리며 신랑을 기다리는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 하느님 자녀로서의 신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정답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깨어 기다림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보여주는 한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전 재산 기부하고 한 달 150만원으로 사는 부자의 사연. 돈이 많으면 인생도 비례해 행복해 질까? 최근 한 해외언론에 소개된 백만장자의 사연이 행복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져 관심을 끌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백만장자인 칼 라베더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고 지금은 한달에 1,350달러(약 150만원)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은 돈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깨문.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라베더는 어릴 때부터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돈이 더 많은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 그러나 그는 문득 자신이 돈을 더 벌기위해 노예처럼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됐다. 라베더는 ‘하와이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 호텔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내 돈을 보고 친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며 ‘긴 시간동안 정말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고 밝혔다. 또 ‘아프리카와 남미도 여행했는데 나의 부와 그들의 가난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죄의식을 느꼈다’며 ‘나의 소비행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기 힘들다고 결론내렸다’ 고 털어놨다. 결국 그는 그의 사업체, 자택, 별장, 고급 자가용을 모두 팔아 제3국을 돕는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라베더는 ‘인간은 경제적인 성공에 집착할 때 인간다움을 해칠 수 있다’ 며 ‘난 내 자신을 찾기위해 수십년을 소비했다’ 고 말했다.”


2. 세상의 유혹에 갈등할 수 있지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분 앞에 겸손되이 무릎꿇는 우리가 되자.
  요즘 들어 신자분들하고 면담을 하다가 하느님께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는 신자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저 요즘, 사제생활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듭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인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제생활 그만두고 장가나 갈까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면 대부분의 신자분들이 “신부님,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신부님께서 사제생활을 선택하신 것은 영생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지나가는 세상의 즐거움에 나를 맡기지 마시고 신부님이 선택하신 진리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저는 신자분들에게 대답합니다.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이것입니다. 지나 갈 세상의 유혹에 갈등할 수 있지만 영생에 삶에 대한 희망과 그 삶으로 초대하시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바라보기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나가는 세상의 유혹에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농담처럼 신자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있지만 가끔은 세상의 유혹에 미련을 두며 갈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갈등할 수 있지만 그 유혹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즉 그것이 내 삶의 전부요, 진리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내 인생 전부를 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대신 우리가 믿고 투신한 신앙의 진리에 내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2년도 교회전례력을 시작하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미천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다리며 묵상하는 대림시기를 우리는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시기에 맞추어서 우리들에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3-37). 그래서 며칠 전에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아드님의 병고 때문에 통화를 한 어떤 자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이 다녀 가신 후 아들이 의식을 회복했는데 병실에 들른 수녀님과 의사 선생님에게 ‘제가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라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수녀님과 의사 선생님이 그것은 하느님만이 아시니까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는 사랑의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의 죄악과 허영을 모두 내려놓고 겸손되이 그분을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이럴 때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을 때 우리는 그분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으로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지 개발 초창기 대림시기에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어떤 형제님이 찾아오셔서 면담을 청하셨습니다. 면담을 청한 이유는 그동안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미움 때문에 방황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내려놓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말해서 본인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항상 여유롭지 못한 삶을 주었기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더욱더 성실한 모습으로 가장의 직분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와 자녀들이  생활고에 지쳐 자신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더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분노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고, 2년동안 지방을 전전하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 때문에 주변에 서 있는 성당의 십자가를 바라보고도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분노와 미움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최근에서야 깨닫고 그래도 내가 껴안아야 되고, 내가 사랑해야 될 가족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향하던 중 성지간판을 보고 무작정 들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형제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지금 하느님께서 형제님의 모습을 보시고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을 잃지 마시고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시고 사랑하시는 형제님이 되십시오.” 그렇습니다. 순간 순간 알 수 없는 세상의 시련과 갈등, 고통, 유혹들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은 그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깨어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 때입니다. 겸손된 모습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그분 앞에 무릎 꿇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 봉헌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