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67호(2012년 6월): 살아가다보면 하기 싫지만 마땅히 해야될 일도 있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2-06-01 15:37     조회 : 947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5월 한달은 전국의 많은 신자 분들이 저희 성지를 방문해주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성지를 방문한 신자분들에게 저희 성지의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얼을 알리고 그 안에서 참다운 하느님 사랑의 길을 되새길 수 있었다는 데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고 여러 후원회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아울러 여러분들에게 기쁜 소식 한 가지를 전해드립니다. 지난 3월 수원교구 성지위원회에서 논의되었던 추가 시복추진자 선정에 대한 결과가 주교회의 소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5월 중에 저희 성지 측으로 통보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희 성지에서는 지타태오 순교자께서 이미 시복추진자로 선정되셨던 장토마스 순교자와 더불어 추가 시복추진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함께 이 기쁨을 나누며 여러분들의 기도 안에서 이분들이 시복의 영광에 오를 수 있도록 끊임없는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1. 살아가다보면 하기 싫지만 마땅히 해야 될 일도 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되는 나의 희생을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는 우리가 되자.

  언젠가 30대 후반의 자매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내 눈앞에 놓인 삶의 상황이 좋은 일, 선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적으로 괴롭고 싫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다시말해서 이 자매님은 그 누구보다도 착한 지금의 남편을 만나 10년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과 더불어 부족한 자신을 딸처럼 사랑해 주시는 시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했고, 감사한 나날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건강하시던 시아버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그 충격과 슬픔에 시어머님이 쓰러지시면서 그 휴우증으로 몸 한쪽을 못 쓰시게 되셨습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모든 가족들, 특별히 남편이 그 누구보다도 힘들어했고, 이것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자신 때문에 남편이 어머니에 대한 좋은 결단을 못 내리고 걱정하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자신이 먼저 시어머님을 모시자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너무나도 기뻐하고 감사했고, 그 결정에 따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시어머님을 집에 모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아버님을 잃고 슬픔에 처해 있는 시어머니를 같은 여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정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병든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생활이 불편함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옥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 안에서 자신을 더욱더 힘들게 하는 것은 겉으로는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께 다가가는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시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이라는 악한 마음을 먹는 자신의 모습이 위선자처럼 느껴져 늘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매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어떤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어떤 형제님이 사제관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형제님이 저에게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 안에서 하느님께 지향을 두고 있는 좋은 결심이 은총으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형제님이 처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지향을 두고 있는 좋은 결심은 어떤 것인가? 이분에게는 평소 허물없이 지내고 계시던 지인이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병마가 찾아와 당신이 하고 있던 사업체를 그 지인에게 잠시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을 치료하던 중에 그 지인이 회사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사욕으로 회사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놀랐고, 병 치료 중이었지만 급히 회사에 나가 사태를 수습하였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엉망이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그 분노를 가라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에 따라 용서하기로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시시각각 몰려오는 그 분노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용서라는 삶의 실천이, 그 희생이 너무나도 괴로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자 매일 미사에 참례하며 이런 지향으로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당신께 바치는 이 희생을 통해 당신께 영광을 드리기를 멈추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이 형제님이 저에게 하느님 보시기에 보잘 것 없는 희생이지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하는 자신의 좋은 결심과 지향이 결코 흐트러지지 않도록 기도를 청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자매님에게 들려드리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우리가 생각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상황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 드린 형제님의 모습처럼 분노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그 상황 속에서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즉 지금의 내 심정으로는 하기 싫은 일이지만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가? 아까 그 형제님의 모습처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나의 희생을 통해 하느님 당신께 영광을 돌린다는 마음의 자세로 서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될 때 때때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서도 세상이 줄 수 없는 삶의 희망과 기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내가 위선자가 아닌가?’ 라는 고통과 번민속에 쌓여 괴로움 속에 빠질 수 있겠지만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 희생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자매님이 되실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우리가 생각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상황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 분노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 상황 속에서 그 고민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고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 즉 마땅히 해야 될 일에 투신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으로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신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바쳤던 기도를 여러분들과 함께 이 지면을 통해 바쳤으면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직면하신 상황은 당신께서 원하지 않은 상황이셨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투신에 따른 그 모든 희생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로 승화시키고 계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를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46-55). 


2.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여, 감히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일전에 서울교구 주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유명 탤런트 김태희(베르다) 자매의 신앙고백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요번 달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했던 내용과 부합되어 그 전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때로는 남들보다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는 우월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과시하고 자랑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봐 조심스럽습니다. 그런 이유로 주위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나는 혼자서만 조용히 하느님 사랑을 맛보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잊고 살았다는 것과 내가 그 동안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죄책감입니다. 변명을 굳이 하자면, 내 성격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남에게도 쉽사리 무엇인가를 권유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종교나 믿음 같은 문제는 누가 말로써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님이 쓰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읽으면서 선교 활동에 대해 내가 가졌던 회의적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선교 활동을 할 때, ‘구원’이라는 단어를 꼭 씁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답변을 알아봅니다.

  1. 누가 구원되는가? - 인간이 / 2. 누가 구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 3. 무엇으로부터 구원되는가? –죄에 의해 배가(倍加)된 인간의 유한함으로부터 / 4.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 구원되는가? –더욱 정의롭고 보다 형제애 적이며 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와 교회에 매주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일까요? 솔직히 나는 자신이 태어난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리스도교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수없이 많은데, 그건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회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교회에 속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하느님의 목소리인 ‘양심’에 따라 도덕적, 인격적으로 사는 그들의 행위 안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신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리러 가는 길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게 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말 사랑한다면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 하시며, 그때 취하시는 길이 바로 ‘교회’입니다. 최후만찬 후, 예수님께서는 결코 ‘하느님에게 올라가자’고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활동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끌어안아,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달려오시는 그 서두름인 것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인터뷰 질문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자!” 라고 답해 왔고, 그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나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여, 감히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줄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 덕분에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되는, 나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