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64호(2012년 3월): 보고, 머물고, 행하는 이 세가지 행위는 우리 신앙의 기본이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2-03-05 12:03     조회 : 927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2월 초에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와 함께 독감이 유행했었습니다. 저도 잠깐 일이 있어서 찬바람 속에 몇 시간 있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한과 기침이 나면서 한 2주간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매년 한 번씩은 겨울에 심하게 독감을 앓았었는데 12월, 1월에 아무 이상이 없어서 방심을 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요즘도 낮에는 따뜻한 봄기운이 돌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찬 기운이 남아 있어 건강을 해치기 쉬운 때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면서 우리를 위한 주님의 수고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를 잘 보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1. 보고, 머물고, 행하는 이 세가지 영적 행위는 우리 신앙의 기본이다. 그리고 이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우리는 신앙의 완성에 이를 수 있다.

  예전에 테니스를 배울 때 제 판단으로는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실전에서는 잘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코치가 저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십시오. 잘 되지 않을 때마다 처음에 배웠던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십시오.”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의 기본 행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보고, 머물고, 행하는 세가지 영적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로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존재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세의 나그네 살이에서 우리가 살아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체 안에 머무르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인간 역사 안에서 당신이 계시하신 말씀과 행적이 담겨있는 성서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머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내 눈으로 바라본 하느님의 현존 즉, 성체와 성서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머뭄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하느님이 계시하신 진실되고, 선한 삶의 길을 내 영혼 안에 각인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각인시킨 바에 따라 우리들이 처한 현재 삶의 상황을 겸허히 성찰하고 반성하며 그분의 뜻에 따른 믿음의 길을 결심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세 번째로 ‘행하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현존을보고, 하느님의 현존에 머물면서 깨달은 믿음의 길을 우리 삶에서 걸어나가며 구체적인 은총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저에게 상담하러 오시는 신자분들에게 요한복음 1,35-42절의 말씀을 표구해서 집안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으라고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의 이 내용은 위에서 말씀드린 “보고, 머물고, 행하다” 라는 우리 신앙의 기본행위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위의 복음을 살펴보면 서두에 세례자 요한과 그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세례자 요한은 자신 앞에 등장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에게 저분이 바로 구세주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제자들은 그 말에 예수님을 따라나섰고, 자신을 따라오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요한의 제자들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는 물음을 통해 ‘예수님, 당신을 찾아 왔습니다’ 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 ‘예수님과 함께 묵었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복음에서는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얻은 믿음의 길을 다른 제자들에게도 알려주며 예수님을 따라 나서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복음의 내용에서는 명확하게 “보고, 머물고, 행하는” 우리 신앙의 기본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의 기본행위에 대한 모습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한 4,1-42), 간음하다 잡힌 여인(요한 8,1-11),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루카 10,38-42), 세리 마태오를 부르시는 예수님(마태 9,9-13)….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보고, 머물고, 행하는” 신앙의 기본행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신앙의 기본에 머물지 못함으로써 신앙의 활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일전에도 어떤 형제님을 상담했는데 이 형제님도 이러한 신앙의 기본행위에 충실하게 머물지 못함으로써 신앙의 활력을 잃고 신앙을 포기하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이분은 영세받은지 10년이나 되는 분이셨습니다. 이분의 표현으로는 영세를 처음 받았을 때에는 너무나도 기뻤고, 새로운 삶에로 나아간다는 어떤 묘한 흥분이 있으셨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주일날 미사에 참례한다는 것 빼놓고는 영세받기 전과 조금도 변화가 없는 생활이 이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이렇다보니 영세받은지 10년이 된 지금은 오히려 주일날 미사 빠지면 고해성사 받아야 된다는 의무감이 압박감으로 다가오게 되고, 그리고 이 압박감마저도 “왜 내가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받아들인 신앙을 포기하고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분의 말을 듣고 그 즉시 말씀 드린 것이 “보고 머물고, 행한다” 라는 신앙의 기본행위를 충실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의 신앙생활에서는 이 기본행위에 충실히 머물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에게 신앙의 기본행위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론을 아래와 같이 가르쳐 드렸습니다.
  우선은 당장 문방구에 가서 노트 한권을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트를 신앙노트, 성찰노트라고 명명하고 매주일 선포되는 복음을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에 읽고, 필사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이 복음에 비추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한 뒤, 주일날 미사 참례에 가서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유심히 경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청 가운데에서 내가 구체적으로 일주일동안 살아갈 신앙의 결단, 결심을 한가지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한 바에 따라 일주일동안 열심히 살아나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에 신앙노트, 성찰노트를 펴놓고 그 결심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지고 열매 맺어졌는가를 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실천이 안되었다면 왜, 무슨 이유 때문인지에 대해서 나의 성찰과 반성을 구체적으로 적고 새로운 삶의 결심을 가지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많은 경우 “보고, 머물고, 행한다” 라는 신앙의 기본행위에 충실하지 못함으로써 신앙의 활력을 잃고,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진실되고, 선한 삶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혹시나 우리 성지 회원님들께서도 그동안 이러한 신앙의 기본행위에 머물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번 사순시기를 통해 다시한번 신앙의 기본행위를 익히고, 습득하며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참다운 은총에로 나아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 안에 머물면서 나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힘에 늘 겸손되이 의탁할 것을 고백하자

  일전에 미사를 봉헌하러 성당에 들어가는데 순례를 오신 자매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겨울철 비수기에 찾아온 분들이라 더욱더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다가 일면식이 있는듯한 어떤 한 자매님이 계셔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혹시 언제 한번 성지에 오시지 않았나요?” “예, 신부님. 전에 남편과의 문제로 신부님을 찾아뵙었고, 오늘 주님 안에서 은총의 기쁨을 가지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너무나도 반가운 만남이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자매님과 그 기쁨을 이야기하며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소개해드리자면 이 자매님이 저를 찾아오신 것은 작년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 당시 자매님은 남편과의 문제, 특별히 남편이 사업상 찾게 되는 술집 여자들과의 문제 때문에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다시말해서 이 자매님의 남편은 중소기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그것에 관련된 업자들을 만나고 그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여자들이 있는 술집을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뿐만 아니라 본인도 그 목적을 위해 소위 2차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그동안 남편이 단순히 사업상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줄만 알았지 남편이 그런 행위를 했으리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지병 때문에 행하게 된 정기검진 때문이었습니다. 즉 정기검진 때 이상소견이 나왔고, 그 이상소견은 자매님의 지병에 관한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성병에 걸렸다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에 자매님은 너무나도 놀랐고, 남편을 추궁했습니다.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하던 남편도 나중에는 그 사실을 인정을 하긴 했으나 자매님에게 그 행위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말하기보다는 당신과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며 정당함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남편 앞에서 자매님은 분노가 치밀었고,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자매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자매님, 제가 자매님의 상황에 직면했더라도 자매님과 똑같은 마음을 먹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매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의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나의 힘, 즉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 즉 하느님의 생각,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의지에 의탁했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펼치고자 하시는 당신의 마음,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편에 대한 용서요, 남편에 대한 구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열매 맺기 위해 당신은 끊임없이 남편의 냉담한 마음에 참 사랑의 빛을, 참 생명의 빛을 비추기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런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나를 무장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자매님에게 권고합니다. 매일 하느님의 현존이 살아 숨 쉬는 성서를 읽고 그분의 의지를 자매님의 영혼 안에 각인시키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각인된 성서 말씀을 남편의 핸드폰에 문자로 넣어주며 ‘오늘 하루도 하느님 안에서 열심히.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힘을 믿고 끊임없이 기도에 매진하십시오.”

  저의 이 말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자매님이 저의 말대로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며 성서를 읽고, 남편의 핸드폰에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거 좋은 말씀이네. 고마워” 라고 하며 출근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는 냉담했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자매님과 함께 성당에 나아가게 되었고, 그리고 용기를 내어 고해성사까지 임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분에게 제시해 드린 것도 “보고, 머물고, 행하는” 신앙의 기본이었고, 이 자매님은 이 기본을 충실하게 실천함으로써 살아있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하느님 안에서 나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의지함으로써 놀라운 은총의 열매를 확인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보고, 머물고, 행하는” 신앙의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총의 열매를 확인해야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