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60호(2011년 11월): 나를 비롯한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 생각하는가?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1-11-01 14:09     조회 : 1003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10월 한달은 전국에서 오신 많은 순례객들의 발걸음으로 성지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저도 10월 한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계절에 민감한 성지의 구조상 찬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불면서 이제는 순례객의 발걸음이 뜸해졌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는데 이제 저도 분주함 속에서 자칫 잃어버렸던 하느님과의 만남을 더욱더 깊이 가지며 내적으로 또한번 일신의 기회를 가져볼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속에서 지친 영육간의 피로감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새로운 모습으로 진보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저의 부족한 기도 안에 여러분들이 항상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1. 나를 비롯한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비롯한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가? 욕심은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것인양 살아가도록 하고, 교만은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두도록 충동질한다. 그렇지만 본래 그 모든 것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을 때에 인간은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하여 움켜주었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래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서야만 한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내 것인양 생각하고 마음대로 했었는데 그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래서 늘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늘 감사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이 신부님의 말씀처럼 나를 비롯한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이러한 진리에 따라 우리의 작은 일상에서부터 그 고백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식사하기 전 이렇게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여기 모여 있는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즉 이 기도의 내용에서처럼 교회에서는 내가 애써 벌은 재화를 가지고 내가 마련한 양식이라는 생각대신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것을 나의 육신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 허락하신 양식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나를 비롯하여 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늘 겸손해야 되고, 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1) 나를 하느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느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궁전이다. 나를 하느님의 성령으로 순결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세상의 쾌락과 욕망에 나를 맡겨 더럽혀서는 안된다.
 
  제가 알고 있는 형제님이 계십니다. 법 없이도 살만큼 하느님 안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이 어느 날 저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거듭된 잘못에 대해서 상담을 청하셨습니다. 즉 이분이 최근에 회사에서 부서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자신을 인정하여 옮겨진 부서라는 생각에 더 열심한 마음으로 그 직무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서의 특성상 거래회사 직원들과의 술 접대가 잦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술 접대는 2차, 3차로 이어지고, 그러다가 어느 날 눈을 떴는데 자신의 옆에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놀랐고, 그 날 집에 들어가 아내와 자녀들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접대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내 옆에 다른 여인이 누워있게 되고….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즐기고 있었고, 이제는 하느님 앞에 그리고 아내 앞에 죄스런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궁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하느님의 성령으로 순결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세상의 쾌락과 욕망에 나를 맡겨 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하느님의 도구로 나를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것인 나, 성령의 궁전인 나를 더럽히는 것에는 단호한 태도를 지니십시오. 즉 그동안은 업무차 술집에 갈 때에 빼버렸던 묵주반지와 팔찌묵주를 다시 끼고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그 순간에도 의식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그 순간에 너무 취하거나 욕망에 나를 맡기지 않도록 단호함과 긴장감을 지니도록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것인 나를 더럽히기 보다는 욕망과 쾌락에 맞서서 나를 무장시키고 준비시켜 나를 순결하게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환자들의 쉼터인 라자로 마을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어떤 수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라자로 마을의 어르신들은 손과 발이 뭉그러져 엉망진창이 된 몸이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며 자신을 하느님 앞에 순결하게 하기 위해 매일을 기도 안에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혹시 세상에서 멀쩡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지 못하고 죄를 짓는 이들을 위하여 대신 보속하고 희생하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수녀님이 말씀하신 이분들은 자신들의 몸이 뭉그러진 것에 대해 비관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것인 자신을 매일의 삶에서 순결하게 무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들도 내게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 하느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궁전인 나를 지키기 위해 영적으로 무장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2) 내 이웃, 내 배우자를 하느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내 욕심,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내 이웃은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협조자다.
 
  “예수님을 섬기듯 남편을 섬기십시오.” 이 말은 일전에 저를 찾아오신 자매님에게 들려드린 화두입니다. 즉 이 자매님은 성당에서는 그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성당에서의 겸손된 모습과는 달리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언제나 기를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도 이에 지지 않고 대꾸하게 되고 그래서 항상 부부간의 싸움이 잦았다고 합니다. 급기야는 엊그저께 싸움 끝에 분을 못이긴 남편이 외박까지 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님께 “예수님을 섬기듯 남편을 섬기십시오” 라는 화두를 드리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를 이렇게 드렸습니다. “매일 남편이 들어오면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남편의 발을 씻기며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하십시오.” 그러자 그 자매님이 “아유, 신부님 그것은 죽어도 못합니다” 라고 정색을 하시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뒤이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성서에서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분주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술잔이 오가는 많은 이들과의 흥겹고도 진지한 저녁식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렇게 하루종일 하느님의 일을 하시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자매님의 집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자매님은 버선발로 나아가 ‘예수님,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피로를 풀어드리기 위해 발 씻을 물을 준비했습니다. 이리로 앉으십시오’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이 아무 말씀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뒤이어서 말씀드렸습니다. “남편은 자매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입니다. 아니 하느님께서 자매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보내준 귀한 협력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에서의 주도권도 중요하겠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바라보며 내가 사랑하고 있는 하느님의 협력자 남편을 존중하고, 섬기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웃, 우리의 배우자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더군다나 내 이웃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협조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욕심, 우리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의 배우자와 이웃을 바라보지 말고 존중하고 이해하고 협조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을 섬기듯 남편을 섬기십시오. 예수님을 섬기듯 아내를 섬기십시오. 예수님을 섬기듯 우리의 이웃을 섬기십시오.” 

3) 내게 주어진 시간, 내게 주어진 재능을 하느님의 것으로 보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은 하느님의 은총이 나를 통해 열매 맺어져야 되고 창조되어져야 되는 시간이다.
 
  가끔 신자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마지막 하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어저께까지 있었던 나의 불신과 반목이라는 삶의 결과들을 이해와 용서와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선의로써 열매맺으십시오.” 이런 말씀을 신자분들에게 들려드리는 이유는 많은 분들이 “나는 건강하니까 그래서 아직도 나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나의 헛된 의지와 생각과 감정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대로 시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당신의 것이기에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 서야되고, 방금 전까지 행했던 나의 모든 삶의 모습에 대해서 그분 앞에 고백드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시간들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선의의 열매를 맺도록 늘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2.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고린 10, 31).
  “완덕이란 나의 기쁨,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쁨,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성인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인의 이 말씀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고린 10, 31) 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기초하여 신앙고백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이러한 성인과 사도 바오로의 고백은 ‘나를 비롯한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신앙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대로 우리는 항상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바탕위에 오늘도 내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분명 그분 앞에 서는 그 순간이 두려움이 아니라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