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59호(2011년 10월): 우리의 모습은 하느님 안에 서 있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1-10-05 10:10     조회 : 925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무더위가 늦게까지 기승을 부리다가 갑작스럽게 찬바람이 불어와 적응을 하기가 힘들었던 9월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기온 변화에 건강 조심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성지도 찬바람이 불면서 본격적인 가을 순례철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동안 조용하던 성지가 많은 순례객들의 발걸음으로 가득차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바빠졌지만 저희 성지를 찾아오시는 신자분들에게 순교자들의 얼을 전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여러분들도 기도 중에 함께하여 주시고, 시간이 되신다면 여러분들의 성지를 방문하여 주시길 청원드립니다. 


1.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모습은 하느님 안에 서 있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최근에 미사를 봉헌하는데 어떤 한 자매님 때문에 신경이 쓰여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매님이 미사를 봉헌하는 내내 “나는 그냥 앉아 있는 거니까 너는 상관하지 말고 그냥 미사봉헌 해라”라는 무관심한 태도로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니라 다를까 미사가 끝난 후 같이 왔던 자매님들의 손에 이끌려 저와 면담을 하게 되었고 저에게 “신앙 안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도 못합니다. 내안에 하느님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자매들에게 끌려왔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절대로 성당에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연유를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종교를 갖는다면 천주교에 입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갑자기 몸에 이상이 왔고 곧이어 검진결과 병원으로부터 암 선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그 시기가 빨랐지만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과정을 신앙에 의지하여 극복하자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병마는 치유되었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신앙에 귀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러한 모습이 본당 신부님의 눈에 띄어 봉사자로까지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고통스런 병마의 기간 중에 느낄 수 있었던 신앙 안에서의 평화가 웬일인지 봉사자 활동을 하면서 깨져버렸고 자신에게 남아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대한 실망과 미움, 분노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내가 처음 생각했던 믿음의 모습은 이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6개월을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첫째, 내안에 하느님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느님 안에 내가 있는 것입니까? 둘째,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습니까? 아니면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했습니까?” 이 질문을 드리자 자매님께서 아무 말씀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뒤를 이어 자매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실례를 무릎쓰고 이런 질문을 드린 이유는 내 중심적인 신앙이냐, 아니면 하느님 중심의 신앙이냐에 따라서 우리 믿음의 차이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내 중심적인 신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 지금 자매님의 모습처럼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견과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언제든지 신앙은 내 삶에서 부정적인 요소이기에 저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신앙을 버린다 해도 살아계신 하느님이 죽어있는 하느님으로 갑자기 변화가 됩니까? 아닙니다. 내 인식 속에서 하느님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 삶을 이끌고 계십니다. 더군다나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습니까? 아니면 하느님께서 자매님을 선택하셨습니까? 바로 하느님께서 자매님을 창조 이전부터 선택하셔서 이렇게 살아 숨쉬는 한 사람의 영혼으로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이 선택하신 자매님의 숨을 거두어 당신의 나라로 부르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혹 내가 신앙을 선택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매님, 자매님이 지금 결정하시려는 그 모습은 잘한 선택이겠습니까? 감히 말씀드리지만 잘못된 선택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시작합시다. 그대신 내 중심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신앙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나 자신을 배제하고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합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 하에 하느님께서는 지금 자매님께 무엇을 요구하고 계실까요? 분명 하느님께서는 자매님께 용서와 이해의 사람으로, 사랑과 포용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원하실 겁니다. 이 원의대로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살면서 거듭나고 진보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자 자매님께서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매님의 모습처럼 우리들은 간혹 “신앙 안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도 못한다. 내안에 하느님은 살아있지 않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과 모순에 빠지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 본위의 신앙관, 내 중심적인 신앙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냉담하다가 부모님에게 이끌려 성지에 온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미사 봉헌하는 것 재미없지?” 그러면 한결같이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예, 재미 없어요.” “그런데 이거 어쩌냐? 너의 말대로 미사 봉헌은 재미가 없어. 왜냐하면 미사봉헌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만나면서 그분께서 맡겨주신 우리 삶의 발걸음을 돌아보는 아주 진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진지한 시간을 단순히 세상의 재미라는 잣대만을 가지고 따지려 한다면 아마도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재미를 추구하지 말고 진지하게 하느님 안에서 우리 삶의 발걸음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바로 학생들에게 제가 이렇게 질문하고 답을 해주는 것도 내 본위의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에게도 질문해 봤으면 합니다. “나는 지금 살아계신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진정 우리의 모습은 하느님 안에 서 있을 때 비로서 그 가치가 드러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요한 6,66-69).     


2. 겸손은 늘 우리를 한결같게 하는 힘이다. 영적 교만을 버리자.

  살아가면서 늘 삶의 중심을 잡고자 하는 한가지 명제는 하느님 안에서 처음에 결심했던 순수하고 맑고 선한 지향을 늘 한결같게 가지고 있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늘 유지하는 영적 힘인 겸손함을 잊어버리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저의 나약한 모습 때문에 한결같음을 추구하는 것이 늘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늘 한결같은 분들을 뵙게 되면 부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분 중의 한 분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제가 예전에 군 사목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된 분으로서 군에서 모 부대의 지휘관으로 계시다가 전역을 하시고 민간 기업체에 취직이 되어 그 기업체의 해외지사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잠시 회사업무 때문에 귀국하셨다가 저를 방문해주셨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이분이 이런 고백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저 요번에 성당에서 총무를 맡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총무라니요. 형제님의 지위와 신앙의 열심을 따진다면 당연히 총회장님을 하셔야 되는데요.” “과찬이시구요. 사실은 그 공동체에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몇몇 분들의 세력화입니다. 다시말해서 공동체도 작은데 몇몇 분들의 사견이 공동체의 전체 의견인 것처럼 되어 신부님을 늘 힘들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공동체의 일치가 자주 깨졌습니다. 그래서 기도 안에서 고민하다가 신부님께 말씀드려 제 후배가 사목회장을, 저는 총무를 맡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저를 낮추는 모습을 보인다면 주님의 공동체에서 내가 행해야 될 본분을 그분들이 분명 깨달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역시 형제님다운 지혜로운 선택이십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기도 안에서 그 공동체의 참된 성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이 형제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다시한번 겸손은 늘 우리를 한결같게 하는 영적 힘이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말해서 그 형제님의 지위와 신앙의 열심을 따진다면 그분은 사목회장에 임명받으셔야 될 분입니다. 하지만 그 형제님은 평소 보여주신 모습대로 주님을 일을 위해 자기 자신을 겸손되이 낮추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자신의 세상적인 지위와 자존심, 명예보다는 하느님의 일을 먼저 바라보고 자신을 겸손되이 낮추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늘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중심적인 모습, 즉 영적교만에서 벗어나 늘 하느님 앞에 겸손되이 무릎꿇는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하느님께서는 주시는 참된 은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1-5).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