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57호(2011년 7월):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1-07-01 20:01     조회 : 964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날씨가 더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성지도 순례객의 발걸음이 뚝 끊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지난 순례기간 동안 너무 바쁘게 지내다보니 할머니 몇 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성지의 이런 적막함과 고요함이 너무 좋다’  라는 생각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서운함마저도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음의 때를 준비하는 알찬 시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무더위에 건강 잃지 않도록 주의하시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현재의 시간을 알차게 열매 맺기 위해 노력하시길 저도 기도중에 기억하겠습니다.   
 

1. 윤리적인 삶이란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찾아 행하는 삶이다.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일전에 모성당에서 쁘레시디움 단장직을 맡고 있는 자매님께서 오셨습니다. 이분이 저에게 오신 이유는 일에 지쳐 봉사직을 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시말해서 이분이 쁘레시디움 단장직을 맡으신 것이 올해로 10년째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지난 10년을 살펴보니까 내 삶은 없고 단원들 뒤치닥꺼리만 한 10년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드셨다는 것입니다. 즉 한 집안을 보더라도 한시라도 바람 잘 날 없듯이 이 자매님이 맡고 있었던 쁘레시디움도 단원들간의 반목, 시기, 질투가 항상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느님의 은총이었던지 자매님께서 기지를 발휘해 주님 안에서의 일치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단원들간의 반목, 시기, 질투가 이어지고…. 그래서 이제는 이런 것에서 벗어나서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매님의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우리의 신앙에는 중단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윤리적인 삶이란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찾아 행하는 삶입니다.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이 주님께서 자매님에게 맡겨주신 소명입니다. 다시말해서 자매님이 맡고 있는 일은 자매님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뽑아 세우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뽑아 세우신 자매님의 자리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바람잘 날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주님이 자매님에게 맡겨주신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속에서 자매님께서 주님의 빛을, 주님의 생명을 단원들에게 높이 밝히는 것이 자매님의 소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과 생각에 머물지 말고 주님의 뜻을 바라보며 내게 맡겨진 소명을 중단없이 행하십시오.”
  가끔 저는 신자분들 앞에서 저의 부끄러운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곤 합니다. 그것을 소개해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주교님의 명을 받고 5년전에 성지에 처음 파견되었을 때에는 허허벌판에 컨테이너 한 동을 놓고 성지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에서 성지 인근 동네 할머니 몇 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성지에 파견되어서 처음에 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지에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성지 인근에 마련된 사제관을 나서는데 저도 모르게 ‘허허벌판에, 컨테이너 한동 덩그러니 놓고 할머니 몇분하고 미사하는 그곳에 가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지로 향하던 차를 서해안 고속도로로 방향을 돌려서 무작정 내달렸습니다. 그런데 서해대교쯤 가다보니 ‘이게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 휴게소에서 유턴을 하여 다시 성지에 돌아와 컨테이너에서 할머니 몇분하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그 당시 상황은 비참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소명은 매일 컨테이너에서 할머니 몇분을 모시고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했기에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났다’ 라고 불려지는 이곳 성지에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잘 것 없는 상황, 피하고 싶은 상황, 그것만 생각하면 화가 나고 분노에 치를 떠는 상황, 인간적으로 살아가면서 평생 대면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 우리 삶안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상황을 맡겨주셨습니다. 피하지 말고, 탓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끊임없이 그 상황에서 선을 찾아 행하며 주님 생명의 빛을 밝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사도 20,24). 


2. 열 번을 넘어져도 내가 가야될 목적지를 잊어버리면 안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안에서 보다 나은 선을 향해 오늘도, 내일도 내 삶의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몇 년 전에 어떤 자매님께서 저에게 오셔서 하느님 뜻에 따라 삶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는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즉 그 당시 이 자매님에게 있어 큰 고민은 연세드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아 고민하던 중에 저에게 오셔서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용기있게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을 청하면서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저도 그 자매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을 가졌고, 그 어떤 어려움이 앞으로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모습을 잃지 말자고 말씀드리며 그분에게 안수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자매님이 또 찾아오셨습니다. 이번에도 보다 더 큰 선에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 즉 용기를 청하는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이 자매님이 시어머니를 모신 후 지극한 마음을 가지고 시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자매님 앞에서는 ‘내 며느리’하면서도, 뒤에 가서는 자신의 욕을, 그것도 하지 않은 일을 거짓으로 꾸며 자꾸만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어머니의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남편의 형제들로부터 곤욕을 당했고, 화가 났지만 ‘제가 잘못했습니다. 더욱더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시어머니를 전처럼 대할 수 없게 되었고, 더군다나 자주 찾아오는 남편의 형제들을 대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님이 저에게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겸손된 모습으로 시어머니와 남편의 형제들을 대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하셨습니다. 또한번 이 자매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의 모습을 앞으로도 잃지 말자고 말씀드리며 이분에게 안수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매님의 모습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보다 나은 선을 향해 오늘도, 내일도 내 삶의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열 번을 넘어져도 내가 가야될 목적지를 잊어버리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우리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열매맺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될 때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삶 안에서 언제나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발걸음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 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골로 3,12-13).


3. 행복은 자기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주님의 뜻에 따라 내 것, 내 자리, 내 감정, 내 생각을 과감히 내려놓자.
  언젠가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민들레 국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부족한 식사자리 때문에 매일 아침 이런 외침이 울려퍼진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양보합시다. 먼저 병든 이들이 그리고 며칠을 굶은 이들이 그리고 노약자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양보합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자신이 맨 앞에 있었어도 이 외침에 따라 병든 이, 며칠을 굶은 이, 그리고 노약자들에게 양보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내가 먼저 먹겠다고 서로 간에 아귀다툼 벌이는 일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바로 우리 삶의 모습이 이러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즉 우리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만이 존중받아야 되고, 나만이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탐욕과, 거짓, 사기, 분노, 시기, 질투, 살인이라는 잘못된 삶의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결국 이러한 삶의 결과는 하느님 자녀다움의 신원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삶 안에 동행하시는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뜻에 따라 내 것, 내 자리, 내 감정, 내 생각을 과감히 내려놓고 보다 큰 선에로, 어둠속에 빛을 비추는 삶에로 결단을 내려야 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은총의 삶, 참다운 인생의 행복이라는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