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55호(2011년 5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야 한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1-05-01 20:54     조회 : 916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 부활의 기쁨을 전해드리며, 더욱더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주님께 기도합니다. 일전에 모대리구 운전기사 사도회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효도관광” 차원으로 저희 성지를 방문해주셨습니다. 이분들의 순례지향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저도 기쁜 마음으로 이분들을 대했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분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분들이 삶의 고단함 때문에 신앙에 매진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안타까워서 오후에 강의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세상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느님의 칭찬에 귀를 기울일 때 지금 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일들이 더욱더 값진 은총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영적인 힘은 지금의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들입니다. 즉 오늘 하루 여러분들이 일을 하면 세상적인 재화를 많이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여러분들은 세상적으로는 칭찬을 받고 있어도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중심을 두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칫 내 만족의 행위로 그칠 수 있고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내 만족의 동기가 사라지면 이 일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우선적으로 하느님께 신실하면서 세상 안에서 하느님 자녀다움의 발걸음을 걸어 나가십시오. 이렇게 될 때 여러분들이 삶의 중심을 잃지 않고 이 일을 더욱더 지속적으로 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한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살아계심을 늘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바탕위에 세상의 시선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분의 의향에 매순간 우리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삶의 발걸음은 죽어있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고, 훗날 이러한 우리의 발걸음은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하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믿음의 근본인 부활 신앙의 참된 의미입니다.   


1.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야 한다.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구체적인 뜻을 세우자.
  일전에 모성당에서 레지오 간부를 맡고 있는 자매님이 오셔서 신앙상담을 하셨습니다. 이분의 고민은 성당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의 신앙이 너무나도 메말라서 지금은 냉담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분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말씀을 들려드렸습니다. “자매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야 합니다. 즉 매일의 생활안에서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항상 진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거나 잘 모른 채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자매님과 같은 갈등과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이러한 지향을 두고 다시 시작합시다. 그대신 진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은 늘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즉 매일의 생활속에서 구체적인 지향을, 높은 뜻을 하느님 앞에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고 열매맺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예를 든다면 요번 한달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목표로 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마태오복음을 한달동안 필사하면서 묵상하자’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끝나면 다음 단계는 ‘성체신비와 그 사랑을 묵상하자’라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두세번 평일미사를 참례하고 미사참례 후 한시간 정도 성체조배 시간을 가지자는 결심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합니다. 이렇게 매일의 생활속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지향과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의 신앙은 매일이 새로움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대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느님 안에서 부단히 노력하십시오. 이렇게 될 때 분명 자매님은 하느님께 한발 더 가까이 나아가 있는 신앙인으로 변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야 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즉 진보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가끔 아버지 신부님(평택대리구장 김화태 신부님) 이야기를 들려드리지만 언제나 저는 이러한 점을 아버지 신부님으로부터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일전에도 아버지 신부님이 저희 성지에서 한달에 한번씩 거행되는 평택대리구 성령기도회 미사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미사 강론을 하시면서 당신이 요즘 들어 하고 계시는 영적진보의 구체적인 실천 행위를 많은 신자분들에게 공표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요즘 당신은 매일 성서 한 구절씩을 외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은 우리 삶의 근본이요, 지침이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읽는 것뿐 아니라 외워서 생활 안에서 더욱더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당신이 암기하고 계시는 성서구절 60개정도를 많은 신자들 앞에서 되뇌이셨습니다. 다른 말씀이 하나도 덧붙여지지 않았던 이것이 강론이었지만 저는 아버지 신부님이 한구절, 한구절 성서 구절을 되뇌이실 때마다 저의 영혼이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버지 신부님이 사순시기를 맞이하면서 평생 습관으로 갖고 계시던 반주를 사순시기 동안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하느님을 위한 희생을 늘 봉헌하셨지만 평생 습관인 반주 부분에 이르시면 하느님 앞에서 “이것만은 안됩니다”라고 양보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번에는 그것을 과감히 내려놓고 하느님께 더 한발 나아가시겠다는 결심을 공표하셨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술을 잡수시지 않겠다는 것이 뭐 대단한 영적 결단이냐?’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버지 신부님의 모습을 알기에 ‘요번에도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기 위해 큰 결심을 하셨구나’하며 진심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야 된다는 것,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구체적인 명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실천을 통해 우리는 보다 더 가까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하느님 안에서 구체적인 뜻을 세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골로 3,1-2).


2.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올바름이 습관처럼 되기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올해 들어 제가 큰 결심을 세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금연을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연의 이유는 제 건강상의 문제도 문제였지만 하느님 안에서 결심한 영신적인 노력들이 자꾸만 저의 나약함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금연을 통해 한번 저의 이런 모습을 바꾸어보자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도 자체부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20년 넘게 하루 2-3갑씩 피던 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어버리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시도를 했고 2번의 실패 끝에(1차시도는 금연 7일만에 실패, 2차시도는 금연 5일만에 실패) 지금은 금연을 한지 40여일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담배 생각이 나고, 담배 피는 냄새를 맡으면 그 구수하고, 맛있는 향기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흡연에 대한 욕구보다는 금연에 대한 의지가 더욱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요즘 들어 신자분들에게 이런 저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신앙의 근육을 키웁시다. 올바름이 습관처럼 되기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자’라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즉 금연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흡연에 대한 욕구보다는 금연에 대한 욕구가 커지듯이 우리 신앙의 정신이 내 몸에 습관처럼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어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전에도  남편에게 상처되는 말을 자꾸만 습관적으로 하시는 자매님의 고민을 들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매님, 오늘 당장 집에 가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여보 오늘부터는 절대로 저의 부적절한 말로 당신에게 상처입히지 않겠습니다. 만약 이런 결심을 선포하고 나서도 제가 지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사죄 청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즉 옳지 못한 습관을 주님 안에서 바라보았다면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실천해야 되고, 그 실천에 대한 결심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표하면서 그 결심과 실천이 열매맺을 수 있도록 의지를 세우고 우리 몸의 습관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일전에는 일상의 기도를 해야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실천이 되지 않아 매번 고해성사를 본다는 어떤 자매님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의지를 크게 세우기 위해 부엌 싱크대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크게 써 놓으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며 항상 식사준비 하다가도 기도하지 않았으면 먼저 기도하고 밥을 먹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나약하고 죄많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해야될 일, 올바른 일을 알면서도 과거의 습성과 사고에 머물러 진보하지 않으려 한다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의 의향과 뜻이 내 몸에 습관처럼 되기 위해 신앙의 근육을 키우는 우리들의 부단한 노력이 우리 일상의 삶에서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질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 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고린 9,24-27).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