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성지
 




   
  54호(2011년 4월): 채워져 있을 때보다 비워져 있을 때가 아름답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1-04-05 10:12     조회 : 947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일전에 암이 온 몸에 퍼져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계시는 한 형제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한눈에 뵙기에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형제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안타깝고 슬펐지만 확신있는 목소리로 주님의 말씀을 들려드렸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이 말씀을 들려드리자 그 형제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아멘. 세상과의 이별이 두렵지만 주님 안에서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러시면서 고통중에도 잠시나마 저에게 환한 얼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현세의 그 어떤 고통과 절망안에서도 언제나 삶의 희망을 잃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적인 것에 사로잡혀 일희일비하는 내가 되기보다는 언제나 영원을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안에서 그 발걸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1. 채워져 있을 때보다 비워져 있을 때가 아름답다
  일전에 교구에 행사가 있어 참석을 했는데 조금은 마음이 상해서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선배 신부님의 질책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전에 신부님께서 성지에 관련된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셨고, 저도 그 이야기에 감사드리며 그것에 관련된 것을 찾아보려 했으나 찾지 못하다가 바쁜 일상에 쫓겨 그 일이 관심 밖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신부님이 저를 보시고는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셨고,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한 저에게 “왜 그것을 찾지 못했는가?”라는 말씀을 하시며 역정을 내셨습니다. 그것도 많은 신부님들 앞에서.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내가 학자인가? 내가 성지 개발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그리고 내가 당신이 이야기한 것을 안 찾아본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그렇게 역정을 내가며 하실 필요가 있었나?” 그런데 기도 중에 이런 잡념에 싸여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신부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즉 성지 신부였지만 성지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교회사 공부에 조금은 등한시 했고, 좀더 더 노력했으면 분명히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노력을 등한시 하여 찾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잡고 그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었던지 그렇게 찾을려고 해도 찾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여 그 신부님께 보고 말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첫째 주일 강론을 통해 신자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앞에 놓여진 기분 나쁜 상황만 생각한 채 제 영혼을 가득채웠을 때가 아름답습니까? 아니면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운 채 겸손된 마음으로 다시 노력했을 때가 아름답습니까?” 당연히 신자분들의 대답은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운 채 겸손된 마음으로 노력했을 때가 아름답다고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자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사순시기는 내 것을 채우려 안달복달 못하고 집착하여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웃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바라보는 때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리석음을 보았다면 주님 앞에 과감히 내려놓고 당신을 말씀과 의향을 받아들이기 위한 겸손된 나의 모습을 되찾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저처럼 내 욕망, 내 감정, 내 의지, 내 생각만을 내세우며 거기에서 만족하려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이 시기를 통해 십자가상의 고통과 수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비우시는 예수님의 기도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그리고 이 기도의 선포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라고 청하는 우리의 욕망을, 어리석음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우리가 맞이하는 사순시기와 부활을 통해 철저하게 하느님 자녀다움을 되찾아야 합니다. 또한 영원을 지향하는 사람의 발걸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채워져 있을 때보다 비워져 있을 때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야 될 것입니다.           

2. 내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내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언제나 높은 뜻을 세우자   
  일전에 어떤 자매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이 자매님이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부족한 며느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품었었지만 자꾸만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쳐 며느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즉 아드님과 결혼할 당시에는 며느님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결혼한 이후에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 과격한 언행과 함께 가출을 일삼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놀라고 당황하고 화가 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 그 며느리를 다시한번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중에 며느리의 성장과정이 너무나 불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그 며느리를 주님의 사랑으로 품자고 결심했고, 이혼을 결심하는 아들을 설득해가며 며느리가 가출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앞장서서 따뜻한 품으로 감싸 안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며느리도 이런 자매님의 사랑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한 가정의 아내요, 어머니요, 며느리로서 살아가고자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매님의 눈에 어린 손녀를 거칠게 대하는 며느리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띄게 되었고, 그때마다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가졌던 며느리에 대한 좋은 마음이 분노와 후회로 가득차게 되어 도저히 신앙생활이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선 자매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하느님의 눈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고자 노력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부탁 말씀드립니다. 자매님께서 하느님 안에서 품으셨던 그 사랑을 인내로이 실천하십시오. 이렇게 될 때 언젠가는 며느님이 방황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자매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즉 보다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자매님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나아올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치유할 수 있는 심리상담과 치료에 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한번 하느님 안에서 높은 뜻을 펼쳐주십시오.” 자매님께서도 저의 이런 권유를 들으시자 눈물을 흘리시며 다시한번 하느님 안에서 인내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며느리를 대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위에서 소개해드린 자매님의 모습처럼 내가 원하는 상황보다는 원치 않는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바라보며 갈등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과 시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세상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당장은 괴롭고 힘들겠지만 결국은 주님께서 우리 삶 안에 당신 은총의 열매를 분명히 맺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도 필리피 신자분들에게 보낸 서간을 통해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7-9).
  내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내가 죽고자 하면 살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 높은 뜻을 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3.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겸손과 성찰과 회개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내가 필요로 할 때만 자판기의 음료수처럼 하느님을 내 일상에 끄집어내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필요로 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언제나 겸손과 성찰과 회개의 자세로 그분 앞에 서 있어야 됩니다.”
  일전에 외국 유학중에 잠깐 국내에 들어왔었던 어느 자매와의 대화중에 했었던 이야기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자매님은 공부하다가 어려움을 느끼거나 평가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할 때만 하느님을 찾아 기도했지 평상시에는 내 일상에 묻혀 하느님을 찾기를 소홀히 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분에게 앞서 소개한 것처럼 기도란 내가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의 소리를 내지 말고, 그분의 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의 삶속에서 겸손되이 나를 의탁하라는 말씀을 들려드렸습니다. 이렇게 될 때 그분의 의향에 따라 삶의 발걸음을 올바르게 정향시킬 수 있고, 끝내는 이 발걸음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채워져 있을 때보다 비워져 있을 때가 아름답고, 내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내가 죽고자 하면 살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겸손과 성찰과 회개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회지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린 모든 명제의 지향은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한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 항상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되는지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에 비추어서 주님의 수고수난과 부활의 영광을 묵상하는 이 시기를 통해 지금까지 행해왔던 우리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다시한번 성찰해보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