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의 순교자들


림 베드로 순교자

양간 용소말 출신으로 양지 고을 응다라니에 거주하던 중에, 정 안드레아, 림 요한, 림 안토니오, 이중화 등 총 12명의 교우가 함께 피체되어 수원으로 이송되었고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조명오 베드로 순교자

양간 출신으로 1872년 3월 26일에 체포되어 서울 우포청에서 순교했다.
(*또는 1871년 4월 홍원여와 함께 우포청에서 순교했다고도 전한다.)


홍원여 가롤로 순교자

양간 출신으로 1871년 23세로 경포에게 피체 그해 4월 서울 우포청에서 조명오와 함께 순교했다.


손경서 안드레아 순교자

충청도 홍주 출신으로 유방제 신부를 도와 교회 일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1838년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을 때 거짓으로 배교하고 돈을 주어 풀려났다. 1839년 처남인 정화경 안드레아와 함께 앵베르 주교를 양간(상게)로 은신시켰다. 앵베르 주교가 체포된 후 가족들이 체포되자 자수하여 서울로 압송되었고 1839년 12월 21일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했다.


아래의 다섯 순교자는 장주기 요셉의 친척으로 장주기 성인과 그의 육촌으로 순교자인 장 토마스 등이 수원 고을의 양간 느지지 출신인 점으로 보아 이들도 양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록에 명시된 바가 없으므로 향후 좀더 세밀한 고찰을 요한다.


장경언

성 장주기 요셉의 재당질(7촌)로, 병인박해기 서울의 포청옥(?)에서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장치선

성 장주기 요셉의 조카로 병인박해기에 포청옥(?)에서 5명의 가족이 함께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장한여

성 장주기 요셉의 재종(6촌). 병인박해기에 부인 홍씨와 함께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장 요한

성 장주기 요셉의 재당질(7촌)로 아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해서 순교하였다.


장 요셉의 숙모(방씨)

성 장주기 요셉의 숙모로 성은 방씨이며 장순성의 모친이다. 1869년 서울 우포청에서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림 베드로 순교자

양간 용소말 출신으로 양지 고을 응다라니에 거주하던 중에, 정 안드레아, 림 요한, 림 안토니오, 이중화 등 총 12명의 교우가 함께 피체되어 수원으로 이송되었고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조명오 베드로 순교자

양간 출신으로 1872년 3월 26일에 체포되어 서울 우포청에서 순교했다.
(*또는 1871년 4월 홍원여와 함께 우포청에서 순교했다고도 전한다.)


홍원여 가롤로 순교자

양간 출신으로 1871년 23세로 경포에게 피체 그해 4월 서울 우포청에서 조명오와 함께 순교했다.


손경서 안드레아 순교자

충청도 홍주 출신으로 유방제 신부를 도와 교회 일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1838년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을 때 거짓으로 배교하고 돈을 주어 풀려났다. 1839년 처남인 정화경 안드레아와 함께 앵베르 주교를 양간(상게)로 은신시켰다. 앵베르 주교가 체포된 후 가족들이 체포되자 자수하여 서울로 압송되었고 1839년 12월 21일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했다.


아래의 다섯 순교자는 장주기 요셉의 친척으로 장주기 성인과 그의 육촌으로 순교자인 장 토마스 등이 수원 고을의 양간 느지지 출신인 점으로 보아 이들도 양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록에 명시된 바가 없으므로 향후 좀더 세밀한 고찰을 요한다.


장경언

성 장주기 요셉의 재당질(7촌)로, 병인박해기 서울의 포청옥(?)에서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장치선

성 장주기 요셉의 조카로 병인박해기에 포청옥(?)에서 5명의 가족이 함께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장한여

성 장주기 요셉의 재종(6촌). 병인박해기에 부인 홍씨와 함께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장 요한

성 장주기 요셉의 재당질(7촌)로 아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해서 순교하였다.


장 요셉의 숙모(방씨)

성 장주기 요셉의 숙모로 성은 방씨이며 장순성의 모친이다. 1869년 서울 우포청에서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