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지 다태오

1803~1838

이천 출신 신앙 지도자

혹독한 고문 후 형조전옥

양간 용소말(현재의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출신으로 안중 공소의 인광리(현재의 평택시 현덕면 인광리)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6년 체포되어 1차 배교 후 석방되었으나, 이를 후회하고 순교를 다짐하던 중 1869년에는 피신하라는 주위 권고를 만류하고 포졸들에게 잡혀가서 진위 감옥에 수감, 그곳에서 아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교를 거부하고 수원으로 이송되어 화성 북문 밖에서 1869년 5월 23일 공개 처형을 당했다.

1803~1838

이천 출신 신앙 지도자

혹독한 고문 후 형조전옥

양간 용소말(현재의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출신으로 안중 공소의 인광리(현재의 평택시 현덕면 인광리)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6년 체포되어 1차 배교 후 석방되었으나, 이를 후회하고 순교를 다짐하던 중 1869년에는 피신하라는 주위 권고를 만류하고 포졸들에게 잡혀가서 진위 감옥에 수감, 그곳에서 아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교를 거부하고 수원으로 이송되어 화성 북문 밖에서 1869년 5월 23일 공개 처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