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 성지

수원교구 요당리성지

29호(2009년 4월):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09-04-21 16:33 조회 : 4417

제목: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 부활의 은총과 기쁨이 가득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최근에 학력위조 사건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었던 신정아씨의 최후 변론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너무 쉽고, 편하게 살려고만 했었고, 그래서 이런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쉽고, 편하게만 살려고 했었다는 이분의 최후 변론은 비단 이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약한 우리 모두가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한번쯤은 떨어져봤었고, 또 떨어질 수 있는 유혹입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은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에 경종을 울립니다. 즉 쉽고 편한 세상의 논리에 맞서 진리의 삶을 선택했을 때 때때로 우리는 십자가가 수반되는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미련을 갖지 않고 하느님의 길을 선택한 신앙인의 삶은 죽지 않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쉽고 편한 이 세상의 길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우리 후원회원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1.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
예전에 제가 사목하던 모 본당에서 어떤 분이 자신이 맡고 있는 소임을 소홀히 한적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일이었고, 그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화가 났었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밤새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그 사람을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딴에는 내일 이 사람을 불러서 “어떻게하고, 어떻게하고…” 하는 시나리오까지 다 작성해서 제분을 다 풀어버리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복음을 묵상하다가 이런 글귀를 읽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 그러면서 갖은 못된 짓을 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런 아들을 용서하며 잔치까지 베푸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
저는 하느님을 죽기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랑하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로만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그분을 닮아 그분이 행하신 길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자 화가 나 있었던 저의 모습이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그분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주눅이 들어 어찌할 바 모르는 그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눈 녹듯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오히려 그분이 가엾게 느껴졌고, 그분과 함께 그날 저녁 오랜 시간 유쾌하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50년 동안 제주 이시돌에서 사목하신 한 신부님의 금경축 미사에서 사람들이 신부님에게 “어떻게 이렇게 큰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므로 하느님께 사랑을 돌려드려야 하는데, 하느님이 사랑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고 간단히 대답하셨습니다. 큰일을 이루신 신부님의 말씀치곤 너무나 간단했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될 삶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이러한 모습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사랑하는 하느님을 닮기 위해 당신이 선택하신 궁극적인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아니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2. 하느님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하느님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어느 부부가 사순절에 유명한 수난극을 관람했습니다. 연극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큰 감흥이 밀려왔습니다. 공연 후에 그들은 예수 역을 한 배우를 만나려고 무대 뒤로 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남편은 배우가 극중에서 지고 갔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남편은 부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을 찍어 줘요.” 그는 소품인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려 했으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우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속이 빈 것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무겁죠?” 배우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주님의 삶은 그저 감동을 주고자 하는 연극이 아닙니다. 주님의 삶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비하’(自己卑下)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짧은 생각이나 유익 또는 영광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배신하게 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자매님이 성지 순례에 오셨다가 저에게 성물 축복을 청하셨습니다. 성물 축복을 하면서 보니까 20단 묵주였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님께 여쭈었습니다. “자매님, 20단 묵주네요. 뭔가 마음의 결심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그 자매님이 “신부님, 제가 일전에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피정 중에 지도 신부님께서 그동안 다른 사람을 위해 얼마만큼 기도했는가? 를 물어보셨습니다. 순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정이 끝나면서 그동안 다른 이를 위해 못했던 기도를 더 열심히 봉헌하기 위해 이 묵주를 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 중에는 여러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하느님을 입으로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반면에 하느님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순례의 여정이 끝난 다음에 우리는 과연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그분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3. 그분을 닮기 위해서는 그분만을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최근 영국에서는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청취자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시간이 있는데, 너무나도 재치 있게 해결해 주어서 매주 수천 명의 청취자들이 자신의 고민을 이 프로그램에 보낸다고 합니다. 그 내용 중의 한 부분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23살 남동생이 너무 게을러서 씻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사연에 대해서 그 해결책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그에게 일자리를 찾고 TV속 여자들을 그만 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여자들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남자들을 싫어해요. 계속 그런다면 여자 친구가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어떻습니까? 적절한 대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고민 상담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카운슬러의 나이입니다. 글쎄 이 카운슬러는 엘라이나 스미스라는 7살 먹은 소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이 어린 꼬마 아이가 카운슬러의 역할을 잘 해나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세상의 지식일까요? 물질일까요? 그보다는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이 문제 해결의 비결일 것입니다.
최근에 한 형제님이 실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직과 함께 전세에서 월세로 집안의 살림살이를 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너무나도 괴로워 술을 잔뜩 마시고 집안에 들어갔는데 자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보, 힘내자.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아이들 학원 못 보내고, 먹을 것, 입을 것 풍족하게 쓸 수 없을지라도 당신과 나 아이들이 함께 있다는 거야.” 자매님도 인간인데 왜 안 괴로웠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남편이 왜 실망스럽고 밉게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자매님은 주님 안에서 깨달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바로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 지금 필요한 것은 주님안에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다시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도 때때로 실망과 좌절과 시련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을 세상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면 더 좌절하고 실망할 수 밖에는 없고 결국에는 예수님 곁을 떠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닮아야 되는 그분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질문 드리는 우리의 겸손된 모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여러분들 모두가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우리 주님과 성지 성인들께 두손 모아 기도드리겠습니다.